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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수첩
 
작성자 평화와생명
작성일 2010-08-25 10:37
ㆍ조회: 913  
인간의 동물에 대한 착취는 언제까지 용인되어져야 하는가?

인류사를 돌아보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불평등과 차별과 폭력과 수탈과 착취가 있었다. 이러한 불평등과 폭력과 착취는 너무나도 많은 영역에 걸쳐서 이루어졌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백인들의 흑인 노예제도, 유럽인들의 신대륙 원주민 말살정책, 제국주의의 식민지수탈, 중국의 티벳을 포함한 소수민족 차별정책, 독일에서 벌어진 유태인학살, 자본가의 노동자착취, 남성들의 여성차별, 제3세계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아동착취, 인도 등에서 아직도 변하지 않는 계급제도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많은 문제들은 노예해방운동, 여성해방운동, 티벳해방운동, 노동해방운동 등 개선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있었고 그러한 노력으로 그나마 조금씩 개선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루어졌고 갈수록 더욱 더 폭력과 수탈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동물에 대한 폭력과 착취이다. 이는 다른 부분과 달리 피해를 당하는 대상들이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지킬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착취를 당하는 집단 스스로가 자신들이 받는 처우에 반대해서 조직적으로 항의할 수 없다. 한 집단이 억압에 대항하고 조직을 이루는 능력이 떨어질수록 그 집단은 그만큼 쉽게 착취당하게 된다. 또 인종차별을 당하거나 노동착취를 당하거나 성차별을 당하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물에 대해서는 이익을 얻는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생명이 착취당하는 것에 대하여 외면하거나 자신의 이익실현을 위하여 적극 가담한다.

이런 인간의 동물에 대한 심각한 착취를 여러 관점에서 심도 깊게 다룬 책이 있다. 그 책은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환경운동을 꽃 피웠듯이 세계적으로 동물해방 운동의 성전(聖典)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이다. 『동물해방』에는 인간의 동물에 대한 차별과 착취가 용인될 수 있는가에 대한 도덕적 철학적 논의와 그다지 실질적인 이득도 없으면서 자행되는 동물실험 그리고 농장에서 동물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사육되는지 적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류의 건강과 미래를 위한 먹거리 방식으로 채식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이 다르다고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우리는 많은 차별과 착취를 접한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러한 차별과 착취를 완화하려고 애쓴다.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서 노동해방을 주장하고, 남성의 여성에 대한 차별에서 여성해방을 이야기한다. 또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착취당하는 제3세계 민중들의 민족해방을 이야기한다. 노동자나 여성이나 아동이나 제3세계민중 등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인 자본가나 남성이나 제국주의자들에게 무엇을 근거로 차별 철폐를 요구할 수 있을까?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구호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는 구호로? 아동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구호로? 그러한 구호들로 가해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혹은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관념적인 구호로 가해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하겠지만 자본가들은 자본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또 남성은 남성의 우위성을 내세우며 여성을 하녀처럼 부리려한다. 또 모든 강한 것들은 자신의 강함을 내세워 약한 것들을 착취하려고 한다. 이럴 때 약한 존재들은 무엇을 근거로 강한 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입장이 다른 그들을 어떤 논리로 설득할 수 있을까?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하는 종차별주의자들은 다양한 논리로 자신들의 종차별을 합리화한다. 강한 종이 약한 종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이야기부터 기독교라는 종교의 영향을 받은 종차별주의자들은 신에 의해서 인간이 다른 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도 주장한다. 간단하게 "인간과 동물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종차별주의자들은 이야기한다.

어떤 종이 자신의 우월하고 강한 힘을 바탕으로 약한 종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면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나 남성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 군부독재가 민중을 압제하는 것, 성인이 아동을 착취하는 것 또한 용인되어져야 한다. 스스로 우월한 종족이라고 믿는 백인이 흑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도 용인되어져야 한다. 만약 용인되어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모든 경우에 적용되어질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는 노동해방을 주장하지만 집에 들어가서는 가부장적인 이익을 누리려고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동물과 관련해서는 그들을 이익의 주체로 고려하고 논의하는 것 자체를 회피한다. 지금까지 누렸던 것을 계속 누리고 싶을 뿐인 것이다. 인간 사이의 관계는 인간이기 때문에 평등해져야 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인간과 동물이 종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스스로 종차별주의자임을 내세우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제레미벤담은 자신의 『도덕과 입법 원리에 대한 서설』에서 “문제는 그들이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도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라며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정당한 통치라기보다는 학정이라고 말했다.

피터싱어는 『동물해방』에서 한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와 같은 고통을 고려의 대상으로 삼길 거부하는 자세를 옹호할 수 있는 도덕적인 논증은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물 또한 고통을 느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 고통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대우도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 정신이상자 등 고통에 대한 반응이 일반인들과 다른 경우 그들을 동물들과 같은 대우를 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답해야 한다.

존재의 본성이 어떠하든, 평등의 원리는 그 존재의 고통을 다른 존재의 동일한 고통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 만약 여러 특징들이 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못하며, 평등은 어떤 특징을 소유하는 데 기초하기보다는 이익 동등 고려의 도덕 원리에 기초해야 하며 평등의 영역으로부터 동물을 배제하는 어떤 근거를 발견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동물들이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은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며, 자기 스스로의 이익을 갖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익을 갖는 모든 존재들은 그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명확한 윤리원리에 따라서 대하여야 한다
.

동물에 대한 고문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1986년 미국 의회 기술 평가국 (OTA)은 「연구, 실험, 그리고 교육에서의 동물사용 대체 방안」에서 미국에서 동물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의 숫자는 매년 1천만에서 1억 마리 사이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헤아릴 수 없는 동물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어지는 것일까? 『동물해방』에는 동물에게 행해진 많은 잔혹한 실험들을 실고 있다.

메릴랜드, 포레데릭에 있는 포트 데트릭 미군 생체 의학 연구개발 실험실에서는 60마리의 비글 개에게 다양한 함량의 폭발성 TNT를 먹였다. 개들은 매일 6개월 동안 캡슐에 넣어진 TNT를 먹고 탈수증, 쇠약증, 빈혈, 황달, 저체온, 설사, 식욕 감퇴, 체중저하, 간·콩팥·비장의 확장 증상을 보였고 근육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14째 주에 한 마리가 죽어갔고 16번째 주에 또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이 실험에 참가한 개들에서 최소한의 TNT를 먹인 개에서도 부작용이 관찰되었기 때문에 TNT의 최소 안전용량을 확립하지 못했다.

아이오와 대학의 리처드 비켄과 존 넛슨은 160마리의 쥐를 집단으로 나누어 그들을 전기가 통하는 바닥의 스테인레스 강 우리 안에서 “훈련시켰다.” 짝을 이룬 쥐들에게는 정면으로 서로를 마주할 경우 다른 쥐에게 덤비거나 물어뜯는 싸움을 학습할 때까지 전기 충격이 주어졌다. 이 훈련 후 연구자들은 훈련되지 않은 쥐들이 있는 우리에 충격 훈련을 받은 쥐들을 집어넣고 그들의 행위를 기록했다. 하루가 지난 후 실험자들은 모든 쥐들을 죽여서 털을 깎아 상처를 검사하였다. 실험자들은 쥐들이 보여준 “결과는 충격으로 야기된 공격적 또는 방어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결론 맺고 있다.

영국에서는 거대 기업 ICI와 헌팅던 연구소가 제초제 패러콰트(paraquat)로 40마리의 원숭이를 중독시키는 실험을 하였다. 원숭이들은 몹시 쇠약해져서 토하고, 호흡 곤란을 느꼈으며, 저체온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며칠에 걸쳐서 서서히 죽어갔다. 패러콰트 중독이 인간에게 완만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초래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외에도 변태성욕자가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많은 가학적인 실험들이 동물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코끼리를 쇠사슬에 묶어 놓고 얼마만큼의 코카인에 죽는지 치사량 검사는 왜 하는 것일까? 진공에서 동물이 어떻게 죽는지, 뜨거운 불판에서 동물이 어떻게 죽는지와 같은 실험은 왜 하는 것일까? 또 도대체 동물실험을 통하지 않고도 예측이 가능한 실험들을 왜 하는 것일까?

동물학자들은 한 종(species)에서의 사실로 다른 종의 사실을 추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모험이라고 이야기 한다. 오프렌(Opren)이란 약물은 여러 동물실험에서 위험하지 않다고 통과했지만 영국에서 관절염에 대한 특효약으로 사용한 환자 중 61명이 사망하고 3,500건의 부작용이 보고된 후에 사용이 중지되었다. 또 심장약인 프랙토콜(Practocol)은 동물 실험에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에 반해 동물에게는 유해한 반응을 나타내지만 인간에게는 유해한 반응이 없는 제품들도 있다. 당뇨병 치료에 사용되는 인슐린은 토끼와 쥐에 장애를 유발하지만 인간에게는 그렇지 않다.

미국 의학 협회(AMA)의 한 대표는 의약품 실험에 대한 의회 공청회에서 “동물 실험이 증명하고 있는 바는 거의 또는 전혀 없으며, 이를 인간과 상호 관련시키는 것도 매우 어렵다.”고 증언했다. 일반인들은 동물실험을 행하는 과학자들이 인간에게 유익하고 꼭 필요한 실험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동물실험을 통해 인간에게 유익한 실험은 실험에 희생되는 헤아릴 수 없는 동물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실험과 이권이 관련된 과학·의학·수의학 집단들에 의해서 동물실험의 효과는 과대포장 되고 미화되어 홍보되고 있다. 그로 인해 일반인들은 동물실험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며 막대한 세금이 쓰여지는 것을 허용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동물실험을 실시하며 동물은 그저 소모품으로 소비될 뿐이다. 그래서 유태인 작가 아이삭 바셰비스 싱어는 “생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한 모든 사람들은 나치다”라고 이야기했다.

인간은 인간의 이윤이나 이익을 위해서 동물들을 잔혹하게 다룬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물들을 잔혹하게 다루면서 잔혹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 조차도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이익이 되면 그만이지 하찮은 동물이 어찌되는 것이 무슨 큰 문제냐는 식이다. 이것은 일제의 731부대가 조선과 중국 포로를 대상으로 줄을 세워 놓고 총을 쏘면 몇 명이나 죽는지, 폭탄 위에 사람을 쌓아놓고 터뜨리면 몇 겹이나 죽는지 등을 실험하며 스스로 잔혹함을 느끼지 못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알고서도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할 때 닭들은 부리를 잘라서 우리에 넣어야 하고 돼지들은 태어났을 때 꼬리를 잘라야 한다고 배웠다. 그 이유는 닭의 부리를 자르지 않으면 다른 닭들을 쪼아서 파먹고, 또 돼지꼬리를 자르지 않으면 다른 돼지가 장난삼아 꼬리를 잘라먹는다고 했다. 그런 내용을 배우며 닭이나 돼지는 정말로 잔인한 동물이라고 생각을 했다. 어떻게 자기와 같은 우리에 살고 있는 동족을 심심풀이로 잡아먹을 수 있는가 말이다. 하지만 아주 뒤늦게 동물과 생명에 관심을 갖고 수의학 전공책이 아닌 다른 책들을 보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닭이든 돼지든 모든 생명은 자신이 거주할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공간이 제공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공간이 협소하면 협소할수록 스트레스의 강도는 증가된다. 닭이나 돼지에게도 각자가 편하게 살 수 있는 넓이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하여 ‘밧데리 새장’이라 불리는 5~6층으로 쌓아올린 비좁은 닭장에 4~5마리씩의 닭을 가두어 키운다. 그러니 닭들은 옴싹달싹 못하고 서로에게 끼여서 산다. 심한 경우 누워 있는 한 마리 위에 다른 닭들이 밟고 올라가서 압사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가중되기 때문에 신경질적이 되고 다른 닭을 쪼는 것이다. 결국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닭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이윤에 대한 탐욕이 원인인 것이다. 하지만 대학의 수의학 과정에서는 그런 내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소나 돼지 그리고 닭이 디즈니만화 영화에서 나오는 한가로운 전원의 목장에서 키워질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것이 이미지 홍보의 힘이다. 하지만 실제의 농장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에 막혀서 일반인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10만 마리 정도가 사육되는 밧데리 닭장에는 햇빛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곳에 사는 닭들은 살아있는 동안 한번도 햇빛을 보지 못한다. 쌓여진 닭장에서 배설되는 닭똥은 켜켜이 쌓이고 그 똥에서는 암모니아가 발생한다. 처음 닭장을 들어가는 사람은 그 지독한 냄새와 따가워지는 눈으로 인하여 오래 있을 수도 없다. 대학 졸업 후 다녀본 양계장에서 닭들을 보며 닭들은 그런 환경에 적응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닭들도 그런 환경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닭도 기계가 아닌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호흡기질병이 다발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성장촉진제라는 명목으로 항생제를 사료에 첨가하여 먹인다.

암퇘지들은 최대의 출산율을 위해서 관리된다.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은 어미돼지의 건강을 해친다. 하지만 축산업자는 돼지의 건강은 관심 밖이다. 최단 기간에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고 이익률이 떨어지면 바로 도축시켜버린다. 가축의 복지가 축산업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요즘에는 축산업자들도 가축의 사육환경에 많은 투자를 한다고 홍보하지만 사실은 가축의 이익과 축산업자의 이익은 대립한다. 지속되어지는 스트레스로 암퇘지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다. 그래서 새끼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암퇘지들은 몸이 꽉 끼는 쇠우리에 갇혀 출산을 하고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이 쇠우리에서는 몸을 돌리는 것은 둘째 치고 머리를 돌릴 수도 없다. 자기 몸도 꼼짝할 수 없기 때문에 새끼를 돌보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어느 생명이나 새끼를 돌보려는 어미의 마음은 똑같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축산시스템에는 그런 배려는 남아 있을 여지가 없다. 사람이 몸도 돌릴 수 없는 독방에 갇혀 있다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아마도 질식할 것 같은 갑갑함과 극심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릴 것이다. 돼지 또한 그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쇠우리에 갇힌 돼지는 구속에서 벗어나려 난폭하게 저항하지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누워서 꼼짝 않고 있거나, 가로대 밑으로 주둥이를 밀어내고 낑낑거리는 소리를 낸다. 또는 쇠우리를 갉아대거나 씹을 것이 없으면 씹는 시늉이라도 한다. 이것이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외에도 인간의 육식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은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하여 최소의 비용을 들인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어지고 있다. 자신의 육식의 즐거움을 위하여 다른 생명이 고통 받는 것을 어떤 말로 외면할 수 있을까? 만약 자신의 입의 즐거움을 위하여 다른 생명이 고통 받는 것은 상관없다고 한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존재들을 착취하는 자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원래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착취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인가?

육식은 인류에게 유익한 것일까?

매년 미국에서만 1억 마리가 넘는 소, 돼지, 그리고 양이 도축된다. 가금의 경우는 50억 마리가 넘게 도축된다. 이 가축들에게 먹이기 위한 대두를 재배하기 위해서 1998년에 1만 6,838평방킬로미터의 아마존 밀림이 파괴되었으며 이 면적은 벨기에 국토면적의 절반 정도에 해당된다.
가축 사육장에서 소고기 1칼로리를 얻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 33칼로리가 소모된다. 또 1파운드의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양의 밀에 사용되는 물의 50배가 필요하다. 그리고 1파운드의 동물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송아지가 먹는 단백질은 무려 21파운드이다. 만약 미국인들이 1년에 10%만 고기 소비를 줄인다면 최소한 6,000만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1,200만 톤의 곡식이 인간을 위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육식을 반대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먹는 것을 선택하는 문제는 개인의 자유에 해당하는 영역이므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지나친 육식으로 인하여 아마존이 파괴되고 과다한 화석연료가 소모되어 온난화를 가중시키는 등 직접적인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육식을 하는 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행위가 아마존을 파괴하거나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것과 연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들의 행위들이 모여서 결과적으로는 아마존을 파괴하고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이런 환경파괴 행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환경문제는 나를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모른 척 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영양전문가는 고기의 필요성과 관련해 더 이상 토론을 벌이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고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아직도 고기 없이 살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의심을 품는 자가 있다면 그의 의심은 무지에 기인한다. 또 육식을 즐기는 사람이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의 성인병 발병 비율이 높다. 그에 반해 채식주의자들이 더 건강하게 산다는 많은 연구결과도 있다.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을 야기하고 국민건강을 해치는데 그런 과도한 육식의 문제를 이윤에 눈먼 축산업자들과 그들의 홍보와 식탐에 빠져 과다한 육식의 늪에 빠진 사람들의 개인적인 선택에 방치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피터싱어를 비롯한 동물해방을 위해 노력한 이들 덕분에 동물의 복지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패션 체인점인 베네통(Benetton)은 동물을 사용한 새로운 화장품류 안전 실험을 더 이상 시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아본(Avon), 메리케이(Mary Kay), 암웨이(Amway), 크리스챤 디오르(Christian Dior) 등도 모든 동물실험을 종결한다고 선언했다. 1981년 스위스에서는 10년에 걸쳐 밧데리 새장을 없애기로 했다. 네델란드에서는 1994년부터 밧데리 세상이 불법이 되었다. 그리고 닭들에게는 둥지를 만들 장소와 땅을 긁어 팔 수 있는 장소가 주어졌다. 1989년 12월 영국의 일류 백화점인 House of Frazer에서는 60개이 모피 상점 중 59개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동물에 대한 인식은 예전에 비하여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그들의 이익과 인간의 이익이 큰 충돌이 없을 때에만 고려의 대상이 된다. 만약 동물의 이익이 단순한 식도락적 이유일지라도 인간의 이익과 충돌이 된다면 인간 아닌 존재들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며 그들의 이익은 무시된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의 복지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동물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이다.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든데 다른 존재를 고려한다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는 것이다. 2009년 대한민국은 1인당GDP 기준으로 세계14위라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배부르게 먹어야 다른 생명에게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외국의 많은 경우를 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야만 다른 동물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지는 않다. 가난한 나라지만 사람이 사는 마을에는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사람들과 어울려서 산다.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야기 한다. 그 더불어 사는 세상에는 누가 포함되는 것일까? 그 더불어 사는 세상의 테두리는 인간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그 더불어 사는 세상에 자연의 생명들은 포함되면 안 되는 것일까?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식물을 포함한 세상의 생명들 덕분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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